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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목사 '노 전대통령 극단 선택 납득안가'···한국 네티즌 '뜨거운 논란'

LA 한인 목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쓴 글이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선랜드 지역에 있는 ANC온누리교회의 유진소 담임목사(사진)는 5월27일 '노 전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정말 한국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라는 개인적인 의견이 담긴 글을 교회 웹사이트의 '목사님의 에세이' 게시판에 올렸다. 유 목사는 글에서 노 전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선택에 대해 '내면과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라며 '그분의 행위는 절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영웅적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해도 부끄러움이고 안타까움입니다'라고 표현했다. 또 이같은 논란은 예상한 듯 '이렇게 글을 쓰고 나면 저에 대하여도 혹시 언어 테러에 해당하는 그런 댓글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냥 이 상황에서 혼자말로 혹은 개인적으로 잡담하듯이 말하고 마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것 같아서 이 글을 씁니다'라고 적었다. 유 목사의 이같은 의견이 인터넷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검색사이트인 '야후 코리아'에는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으며 ANC온누리교회 웹사이트에도 수십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유 목사의 글에 대해 네티즌들은 "올바른 말을 하는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측과 "노 전 대통령을 모욕했다"는 측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9-06-05

침묵…애도, 평안한 영면 기원…시카고 노사모 추모의 밤

한국에서 엄수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시간에 맞춰 29일 오후(이하 시카고 시간) 시카고 지역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노 전 대통령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는 ‘추모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시카고 노사모는 지난 24일부터 샴버그 소재 래디슨 호텔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도해왔다. 시카고 노사모는 ‘추모의 밤’이 열린 29일 오전까지 모두 217명의 추모객이 분향소를 찾은 것으로 집계했다. 29일 오후 열린 ‘추모의 밤’ 행사에는 20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 대형 스크린을 통해 CNN 인터넷 채널에서 생중계 되는 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며 깊은 애도를 나타냈다. 영결식이 중계되는 내내 행사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한인여성들의 모습도 목격됐다. 또 한 남성은 행사 장 뒤편에 숨어 어린 딸을 가슴에 안고 비통한 모습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오후 8시부터 자발적으로 모이기 시작한 노사모와 한인 추모객들은 행사장에 마련된 대형 분향소에 국화꽃과 술잔을 올리며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이어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이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했으며 안식년 동안 시카고를 찾은 정의사회구현사제단 신성국 신부가 추모 미사를 이끌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경복궁을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행사장에 모인 한인들은 다시 한 번 대형 분향소로 나가 묵념했다. 또 행사장 뒤 대형 탁자위에 만들러진 하트모양의 작은 초에 불을 붙이며 애도의 뜻을 나타냈다. 행사 참가자들은 헌화와 촛불 점등에 이어 행사장 밖에 마련된 대형 현수막에 애도의 글을 남기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 했다. 대형 스크린에 한국 정부 관료들이 나타나자 고성을 지르며 현 한국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노사모 박재홍씨는 “이번 행사는 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종민(알링턴하이츠)씨는 “노사모는 아니지만 팬이었다. 예의를 표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밝혔다. 일부 참석자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행렬이 경복궁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추모의 밤’ 행사장을 늦게까지 떠나지 못했다.   임명환 기자 mhlim@koreadaily.com

2009-06-01

촛불 1만개 지나 '정토원 안치'…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

○…목탁소리 스님들의 염불소리와 함께 정토원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하얀 국화꽃과 노란 풍선을 양손에 쥔 봉하마을 주민 조문객들의 애도 속에 노사모 회원들이 깔아놓은 노란색 카펫을 따라 정토원의 법당인 수광전으로 천천히 입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도착하기 몇시간 전부터 정토원 곳곳에서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으며 유골함이 도착할 무렵에는 1만여개로 늘어난 가운데 '상록수'와 '사랑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울려퍼졌다. 일부 조문객들은 수광전 아래에 있는 '호미 든 관음상' 앞에 수백개의 촛불로 '편안히 잠드소서'라는 글귀를 만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 안치식은 정토원 홈페이지(www.bonghwasan.org)를 통해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이날 오후부터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는 극락왕생을 빌거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며 곧 찾아뵙겠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이어졌다. 정토원 원장인 선진규 법사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정토원에 안치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접속이 폭주해 지난 28일에는 일시적으로 다운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1시간여에 걸친 안치식을 끝내고 수광전 앞마당에 권양숙 여사가 모습을 드러내자 노사모 회원들과 시민들은 "여사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라고 외쳤다. 아들 건호씨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안치식에 참가한 조문객 등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건호씨는 한마디 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에 "어머니를 대신해 지금 여기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짧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안치식은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좋아하고 자주 불렀던 '상록수'를 시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이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7일장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이 30일 0시를 기해 끝남에 따라 봉하마을은 자율분향 체제로 전환했다. 노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는 29일 자정을 앞두고 마을방송을 통해 "자정을 기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은 공식 종료되고 이후부터는 자율분향으로 전환한다"고 안내하고 조문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2009-05-29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한명숙 전 총리 조사 '님 지키지 못해 통탄, 님은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29일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국민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라며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라고 통탄했다. 한 전 총리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다"며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생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달라"고 말했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떠나는 길···일제히 종이비행기 띄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공동 장의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29일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1시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국민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통해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떠안은 시대의 고역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새벽빛 선연한 그 외로운 길 홀로 가셨습니까"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 전 총리는 "얼마나 긴 고뇌의 밤을 보내셨습니까"라며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라고 통탄했다. 한 전 총리는 "열다섯 달 전 청와대를 떠난 님은 작지만 새로운 꿈을 꾸셨다"며 "고향으로 돌아와 잘사는 농촌사회를 만드는 한 사람의 농민 '진보의 미래'를 개척하는 깨어있는 한 사람의 시민이 되겠다는 소중한 소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설령 님의 말씀처럼 실패라 하더라도 이제 걱정하지 말라"며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생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분열로 반목하고 있는 우리를 화해와 통합으로 이끄시고 대결로 치닫고 있는 민족 간의 갈등을 평화로 이끌어 쓰러져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꽃피우게 해달라"고 말했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이 대통령, 헌화 도중 야유에 멈칫

이명박 대통령은 영결식 시작 약 4분 전인 오전 10시56분쯤(한국시간) 부인 김윤옥 여사 정정길 대통령실장 등과 함께 식장에 도착해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의 안내를 받아 귀빈석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았다. 이 대통령은 시종 침통한 표정을 지었으며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를 낭독하는 동안에는 이따금 눈을 감으면서 경청했다. 이 대통령 내외는 영결식 말미의 헌화 의식 순서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족에 이어 두 번째로 영정 앞에 헌화했다. 이 때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이 대통령을 향해 "사죄해. 이명박은 살인자야.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십시오. 정치보복 사죄하십시오"라고 소리치면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백 의원과 함께 있던 일부 추모객들도 이 대통령을 향해 야유를 쏟아냈다. 이에 사회자는 "고인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자리인만큼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제단으로 나갔던 이 대통령 내외는 잠시 멈칫하면서 주위를 살핀 뒤 곧바로 헌화를 하고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살핀 뒤 곧바로 헌화를 하고 묵묵히 자리에 앉았다. 한편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영결식 하루 전인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좀 견뎌야 했다는 심정도 있지만 그가 겪은 치욕과 좌절 슬픔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런 결단이랄까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서울역 분향소를 찾아서다. 김 전 대통령은 29일 열릴 경복궁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려 했으나 정부가 막아 못하게 됐다는 사실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상록수' '님을 위한 행진곡' 울려

○…서울 시청 '노제'에서 연예인 김제동은 노 전 대통령이'운명이다'고 남긴 유서에 대해 "이 운명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가수 양희은이 '상록수'를 부르는 동안 시민들은 노란색 풍선을 하늘로 띄어보내며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님을 위한 행진곡'도 이어졌다. ○…한 단체가 제작한 근조 리본의 '노무현 대통령 死랑합니다'라는 문구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이 단체는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줄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운구 행렬이 떠난 후 봉하마을에 남은 일부 추모객 200여명은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서 '노무현'이란 글자 모양대로 앉아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들은 "하늘에서라도 노 전 대통령이 보시고 우리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대통령의 손녀딸 노서은(6)양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 주목받았던 서은양은 발인식에서 할머니 권양숙 여사 옆에 앉아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려 보이는 등 천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3일 서거 후 28일까지 6일간 봉하마을은 진기록을 남겼다. 조문객이 먹는 쇠고기국밥을 끓이는 데 80㎏짜리 쌀 480가마(57만여 명분)가 소비됐다. 쇠고기도 하루 평균 800㎏ 이상이 들어갔다. 황소 1마리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김치 300㎏과 수박 500여 개 생수 6만 병 떡 10t 등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여만 송이씩 60여만 송이가 쓰였지만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깨끗한 것을 골라 재활용하기도 했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서 봉하마을로 영원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LA시간 28일 오후 7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발인식 이후 서울로 운구돼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를 거쳐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돼 봉하마을의 사찰인 정토원에 안치됐다.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유족 등 2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의 마을회관 광장에서 유족과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분간 발인식을 치른 운구차량 행렬이 고속도로를 거쳐 오전 11시 경복궁 영결식장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군악대의 '새처럼 자유롭게' 연주로 시작된 이날 영결식에서 한명숙 전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비롯해 고인의 행적을 기리는 생전의 영상 방영 유족과 고위 인사 등의 헌화 그리고 조가에 이어 3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의식을 끝으로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영결식이 끝난후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조시와 진혼무 등 노제를 지낸 뒤 만장 1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어 운구차량을 이용해 오후 3시께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오후 9시께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최상태 기자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아쉬운 길···' 한인사회서도 추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진행된 28일, 한인들도 숙연한 분위기 속에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한인들은 TV를 통해 영결식 모습을 지켜보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분향소가 마련됐던 노동상담소에는 10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남가주추모위원회(추모위원회)’관계자들과 분향소를 찾은 150여명의 한인들이 함께 영결식 모습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철규(70)씨는 “오늘 영결식에 맞춰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며 “전임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참가하는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또한 타운 식당 곳곳에서도 영결식을 생중계해 많은 한인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이날 분향소가 마련된 노동상담소와 LA총영사관에는 마지막 추모객들이 고인을 애도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까지 두곳을 찾은 추모객 수는 26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위원회의 김인수 사무총장은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오전부터 많은 한인들이 방문했다”며 “방명록에 이름을 적지 않은 한인들까지 감안하면 23일부터 노동상담소 분향소를 찾은 추모객이 2000명을 훨씬 넘어선다”고 말했다. LA총영사관에도 600명 가까운 추모객들이 다녀갔다. 특히 영사관 분향소에는 미 국무부 스탠리 콜린 차관보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 영사관 관계자들도 찾아 조의를 표했다. 28일 분향소를 방문한 히로시 후루사와 일본영사관 정무영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많은 한국인과 한인들이 슬픔에 빠져있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은 28일 조기를 게양하기도 했다. 한편 추모위원회는 오늘(29일) 오후 7시부터 LA한인타운 임마누엘 교회에서 ‘추모의 밤’행사를 개최한다. 추모위원회의 김인수 사무총장은 “자원봉사를 할 한인들은 오후 5시까지 임마누엘 교회로 오면 된다”며 “오늘 ‘추모의 밤’에는 300명~500여명의 한인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서기원 기자 kiwons@koreadaily.com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조문 국밥에' 6일간 쌀 480가마···하루 쇠고기 800kg·생수 6만 병

○…23일 서거 후 28일까지 6일간 봉하마을은 진기록을 남겼다. 조문객이 먹는 쇠고기국밥을 끓이는 데 80㎏짜리 쌀 480가마(57만여 명분)가 소비됐다. 쇠고기도 하루 평균 800㎏ 이상이 들어갔다. 황소 1마리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김치 300㎏과 수박 500여 개 생수 6만 병 떡 10t 등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여만 송이씩 60여만 송이가 쓰였지만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깨끗한 것을 골라 재활용하기도 했다. ○…'노(盧)의 운전사'로 불리는 최영(45)씨가 영구차 운전을 맡아 봉하마을에서 서울로 다시 봉하마을까지 800km가 넘는 마지막 길을 함께 한다. 최씨는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21년간 줄곧 노 전 대통령의 운전을 도맡아 왔다. ○…한 단체가 제작한 근조 리본의 '노무현 대통령 死랑합니다'라는 문구가 네티즌들의 비난을 샀다. 이 단체는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줄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이해할 수 없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시각으로 29일 오전 8시쯤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에 있던 추모객 500여명이 대한문과 서울 광장 사이의 도로를 점거해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만장 30여개를 앞세우고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영결실에 참석할 수 없다"며 도로를 점거한 뒤 광화문 방향으로 진출하려다 경찰의 저지에 막히자 자리에 앉아 농성을 벌였다. ○…운구 행렬이 떠난 후 봉하마을에 남은 일부 추모객 200여명은 마을회관 앞 주차장에서 '노무현'이란 글자 모양대로 앉아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이들은 따가운 햇살에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하늘에서라도 노 전 대통령이 보시고 우리 마음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대통령의 손녀딸 노서은(6)양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듯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 주목받았던 서은양은 발인식에서 할머니 권양숙 여사 옆에 앉아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려 보이는 등 천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손녀딸의 이름을 '노다지' 또는 '노생금'으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결국 노서은으로 지었다고 한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떠나는 길 일제히 '노란 종이비행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이 29일 오전 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유족과 수만여명의 조문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노 대통령의 유해가 담긴 관을 태극기로 감싸는 것으로 시작됐다. 고인의 유해가 담긴 관은 평범한 일반관이 사용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과 무궁화 대훈장을 앞세운 노 전 대통령의 관이 봉하마을 바깥을 빠져 나와 운구차인 검정색 캐딜락에 실리자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흐느낌과 오열이 터져 나왔다. 고인이 평소 즐겨먹던 음식을 차려놓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의식인 견전제가 마무리된 뒤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는 마을회관 인근 노사모회관으로 향했고, 지지지와 주민들은 노 전대통령의 애도하는 의미에서 노란색 종이비행기 수천개를 접어 날렸다.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와 조카 노지원씨가 든 노 전대통령의 영정과 무궁화 대훈장은 마지막으로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향했다. 5시24분쯤 사저 대문에 도착하자 권 여사는 슬픔이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사저를 둘러본 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운구차로 향하자 아들 건호씨도 슬픔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봉하마을에서는 평소 노 전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가수 양희은의 ‘상록수’가 울려 퍼졌다. 권양숙 여사는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유족들과 함께 영정의 뒤를 따랐다. 200m 도보로 이동하던 운구 행렬은 국회로 장식된 검은색 캐틸락에 옮겨져 노사모 사무실을 거쳐 5시 58분에 봉화마을을 떠났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갑호 비상체제 가동···운구행렬 삼엄 경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엄수되는 29일 경찰이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했다. 갑호비상은 가용 경찰력이 모두 투입 대기 상태에 들어가는 가장 높은 단계의 비상근무 체제를 말한다. 경찰은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서울 경복궁~서울광장~서울역~수원 화장장~봉하마을로 이어지는 장례행렬의 이동 구간에 고속도로 순찰대와 지방경찰청별 경비 인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삼엄한 경호.경비 활동을 펼쳤다. 장례행렬은 봉하마을에서 국도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을 이용했다. 경찰은 고속도로에서는 순찰차 13대를 동원해 장례행렬을 호위했다. 순찰차는 행렬의 앞쪽에는 사이드카 5대가 역 V자로 감싸고 중앙분리대 반대쪽 측면은 4대 뒤쪽은 2대가 배치됐다. 행렬의 2~3㎞ 앞에는 선도차 2대가 달리며 안전을 점검했다. 행렬이 국도나 서울 도심에 들어서면 사이드카가 경호를 책임졌다. 서울 도심에서는 선두에 사이드카 5대가 역 V자로 배치되고 좌우 측면에는 각 10대씩 뒷면에는 3대 등 총 28대의 사이드카가 동원됐다. 행렬 앞에는 오픈카 4대가 직사각형으로 대형을 유지하며 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행진했다. 광화문 광장에는 시민 열린마당에서 시청 앞까지 정부종합청사에서 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시민의 차도 진입을 차단했다.

2009-05-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봉하마을서 봉하마을로 영원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LA시간 28일 오후 7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의 발인식 이후 서울로 운구돼 영결식과 서울광장 노제를 거쳐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고 나서 봉하마을의 사찰인 정토원에 안치됐다.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ㆍ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ㆍ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유족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의 마을회관 광장에서 유족과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분간 발인식을 치른 운구차량 행렬이 고속도로를 거쳐 오전 11시 경복궁 영결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됐다. 이어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인 약력보고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조사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이뤄줬다. 영결식이 끝나고서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조시와 진혼무 등 노제를 지낸 뒤 만장 1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어 운구차량을 이용해 오후 3시께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오후 9시께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으며 향후 사저 옆 야산에 조성되는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최상태 기자

2009-05-28

뉴욕 동포들도 '고이 잠드소서'…맨해튼 한인타운서 영결식 지켜보며 애도

'부디 편안하게 가소서….’ 2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함께 맨해튼 32스트리트 한인타운도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뉴욕노사모를 포함한 ‘뉴욕·뉴저지 추모 범동포모임’ 등은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추모식을 열고 노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분향소를 마련하고 영결식 장면을 녹화해 방영했다. 분향소에는 국화를 든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수백여명의 한인들은 한국에서 거행되는 영결식 장면을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일부 추모객들은 노 대통령의 애창곡 ‘상록수’가 추모곡으로 불려지자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야인사 문동환 목사(전 평민당 부총재)는 이날 추모식에서 “가난한 시절 투지와 정의로 살아온 노 대통령은 다른 세상으로 가셨지만 그분의 정신과 얼은 우리 가슴에 깊게 남아있다”며 “모두가 즐겁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노력한 그분의 정신은 부조리의 사회가 바뀌는 발판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초등학교 동문이라고 밝힌 최모(61·남)씨는 “어릴 때 봉하마을의 산에서 놀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며 “노 대통령은 서거했지만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안타까워했다. 두 자녀와 함께 추모식에 참가한 전모(39·남)씨는 “관료사회에 굴하지 않고 뜻을 굽히지 않던 노 대통령의 모습이 좋았다”며 분향소를 찾았다. 추모 범동포모임은 이날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에게 보낼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이들은 서신을 통해 “노 대통령께서 못 다 이루신 한국 사회의 개혁과 민주화를 우리 모두가 나서서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그 마음 그대로 권 여사님을 사랑합니다. 힘내십시오”라며 위로의 글을 적었다. 이중구 기자 jaylee2@koreadaily.com

200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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